[취재수첩] 中企 사지 내모는 건축법 개정안

입력
기사원문
김소현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화재안전 구실 스티로폼단열 퇴출
1만명 실직 쏟아져 현장혼란 우려

김소현 정치부 기자 alpha@hankyung.com
“가장 시급히 논의할 현안은 중소기업 지원 방안 등 민생 위기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된 지난 1일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이내 무색해졌다. 민주당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중소기업 다수를 경영 위기로 몰아넣을 것으로 우려되는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25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26일 본회의 처리를 앞둔 건축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건축 마감재와 단열재 등의 화재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샌드위치 패널의 강판 사이에 들어가는 단열재인 ‘심재’ 자체에 700도에서 10분 동안 버텨야 받을 수 있는 ‘준불연’ 성능을 받도록 했다. 스티로폼으로 불리는 발포스티렌(EPS), 폴리우레탄 자체로 준불연 성능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는 결국 유리섬유인 글라스울을 사용하는 샌드위치 패널만 시장에 남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법안 개정의 명분은 ‘안전’과 ‘생명’이다. 중소기업계도 이 같은 방향에는 동감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평가 방식을 바꿔 특정 재료를 시장에서 아예 퇴출하고, 특정 대체재만 살아남도록 하는 방식의 법안 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존 규정에 맞춰 EPS와 폴리우레탄을 사용한 샌드위치 패널 자체의 화재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와 개발을 진행해온 업체들이 시장 변화에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EPS 등이 완전히 시장에서 퇴출될 경우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거나, 최악의 경우 돈을 아무리 들여도 이 재료들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EPS와 폴리우레탄은 화재에 취약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비용과 월등한 단열, 방음 성능이라는 장점도 뚜렷하다. 이들 재료가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로 인한 건설·단열 비용 증가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 자명하다. 법안이 처리되면 300개 영세기업 1만 명의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건축법 개정안의 논의 과정은 과거 ‘민식이법’ 때를 보는 듯하다. 당시 어린이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여당의 명분에 밀려 누구도 법안에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법이 시행된 이후 과잉 처벌 조항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축법 개정안 역시 어느 의원도 선뜻 나서서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중소기업은 1년도 안 되는 법안 시행의 유예기간만이라도 늘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건축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처리될 경우 민생 위기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해법’이 되기는커녕 건설 현장 혼란만 초래할 것이란 산업계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경제지 네이버 구독 첫 400만, 한국경제 받아보세요
한경 고품격 뉴스레터, 원클릭으로 구독하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